Han's Letter - 남자 혼자 살림하기

얼마 전 가족들과 미국에서 2주 정도 시간을 보냈다. 오하이오 허슨이란 촌 구석 좁은 아파트에서 그야말로 24시간을 붙어 지냈다. 몇 가지 목적이 있긴 하지만 쉬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이런 저런 일을 보고, 예전에 알던 사람 만나고, 쇼핑 다니고, 산보 하고, 장도 보고 드라마도 같이 보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사실 내가 꿈꿔온 그런 생활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가족들과 바퀴벌레처럼 붙어 지내리라 결심하고 한 일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불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좋은 가족이지만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지낸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 번은 쇼핑을 간다는데 할 일을 핑계로 혼자 집에서 몇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는데 훨씬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예정을 앞당겨 혼자 귀국을 했다. 가족은 미국에 남겨두고…

처음 며칠은 너무 좋았다. 아무도 없는 집이 좀 그렇긴 했지만 나를 참견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무엇보다 자유로웠다.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거의 속옷바람으로 돌아다녀도 상관없었다. 청소를 안 해도 괜찮았다. (집사람은 매일 청소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원할 때 일어날 수 있고 잘 수 있었다. 온 동네에 신문을 늘어놓고,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놓아도 잔소리 하는 사람이 없었다. 집에 안 들어와도 상관이 없었다.(물론 안 들어온 적은 없다) 이 얼마만의 자유인가? 하지만 그런 감격은 며칠 가지 못했다. 우선 끼니가 문제였다. 처음 며칠은 동네 앞 해장국집, 분식집, 도넛집 순회하면서 즐기고 저녁은 약속을 잡아 버텼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밖에서 먹는 것이 참기 어려웠다. 빨래도 걱정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만사가 귀찮은데 언제 빨래까지 한단 말인가? 그래서 다림질을 필요로 하는 옷은 가능한 입지 않고 하루 입고 갈아입던 것을 이틀로 늘이는 방법으로 생활을 바꾸었다. 집사람이 올 때까지 지금의 재고로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올 때의 어둠과 썰렁함도 싫었다. 늘 나를 반겨주던 집사람과 애들이 없는 집은 더 이상 내 집이 아니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드라마도 보고 싶지 않았다. 늘 “저 사람 어때? 밥맛이다. 괜찮다. 어쩌구 저쩌구” 떠들면서 보던 드라마와 혼자서 아무 소리 못하고 보는 드라마는 완전히 느낌이 달랐다. 사실 나는 드라마를 좋아한 것이 아니라 드라마를 보면서 가족들과 떠드는 것을 좋아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다른 사람과의 약속 잡는 것도 생각처럼 내키지 않았다. 얼마든지 내 마음대로 약속하면 되는데 희한한 일이었다. 집에 있으면 하루종일 한 마디도 안 하고 사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의욕이 떨어졌다. 마음이 가라앉고 자꾸 졸음이 왔다. 혼자 마음껏 책을 읽으리라는 결심도 흔들렸다. 자꾸 집사람 오는 날짜가 얼마 남았는지만 계산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다.

주말 오전 너저분한 집안을 깔끔하게 청소했다. 문을 열고, 침대시트를 털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했다. 중간에 밀렸던 빨래도 넣고 돌렸다. 어려운 줄 알았더니 별거 아니다. 걸레를 빨아 가구 등을 닦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통까지 목욕탕에서 깨끗이 닦았다. 이왕 나선 김에 목욕탕도 거울부터 바닥까지 닦았다. 땀까지 날 정도로 열심히 청소를 했더니 몸과 마음이 깨끗해진다. 영혼이 맑아진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 여자들은 이 맛에 살림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이나 나무나 너무 붙어 있는 것보다 일정 부분 거리를 두고 가끔씩 떨어져 지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부도 그렇고 부모와 자식도 그렇다. 심지어 국가도 그렇다. 외국엘 나가봐야 조국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느낄 수 있다. 그 뻔한 사실을 이번에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매일 먹는 식사, 매일 입는 옷, 사는 집 모두 그냥 되는 것이 아니고 매일같이 땀을 흘리고 몸을 움직여야 유지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혼자 잘 노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야 다른 사람과도 잘 놀기 때문이다. 집 사람 없이도 잘 노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야 집사람이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고 해도 흔쾌히 보내줄 수 있고 그래야 사랑 받는 남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혼자 있느냐 다른 사람과 있느냐의 방정식은 아니라 의도된 것이냐 아니냐의 방정식이다. 혼자 있고 싶지 않았는데 혼자 있을 수 밖에 없으면 외롭지만 의도적으로 혼자 있기를 선택하면 외롭지 않다. 혼자 있을 때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보다는 의연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생산적으로 즐기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더 성숙된 모습으로 재회하는 기쁨을 느끼고 싶다.


by CRONOS | 2006/08/17 18:59 | 나누는 감동과 사랑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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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k at 2006/08/21 19:14
모처럼 많이들 모여서 좋았다..다들 잘 지내고 있더군...
월요일인데 역시나 피곤한 감이 있다 어제는 하철이네 집 옥상에서 자다 쌀쌀한 새벽기온에 힘들었다...다들 아침에 헤어지고 난 재훈이랑 사우나 갔다 기숙사 오자 마자 피곤해서 푹잤다 감기조심하고 부모님 잘 챙겨드려라..가을되면 산에나 가자...힘내서 생활하자~ 그럼 담에 한잔 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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